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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여성의 날(Festa della Donna)'

by 리베원 2025. 5. 20.

 

미모사꽃으로 전하는 연대, 존중,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의 '여성의 날(Festa della Donna)'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탈리아의 '여성의 날(Festa della Donna)'
이탈리아의 '여성의 날(Festa della Donna)'

 

3월 8일, 이탈리아에서는 왜 미모사꽃을 선물할까?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전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이 날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페스타 델라 도나(Festa della Donna)’, 즉 '여성의 축제'로 불리며,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여성을 존중하고 축하하는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이 이탈리아에서 독자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 로마에서 여성단체인 UDI(Unione Donne Italiane, 이탈리아 여성연합)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상징하는 꽃으로 '미모사'를 제안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에는 장미나 백합과 같은 전통적인 꽃들이 여성의 날을 상징하기에는 가격도 비싸고 계절적으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미모사는 3월 초에 만개하며 저렴하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꽃이었고, 작고 노란 꽃잎들이 군집을 이루는 모습이 여성 간의 연대와 협력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채택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여성의 날이 다가오면 노란 미모사꽃다발이 거리 곳곳을 물들이게 되었고, 어린아이부터 성인 남성까지 여성 가족, 친구, 동료에게 이 꽃을 건네는 풍경이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는 상사나 동료가 여성 직원에게 미모사를 선물하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어머니나 선생님에게 미모사를 만들거나 그려서 전하는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진 전통이 되었습니다.

 

 

‘축하’와 ‘투쟁’ 사이, 여성의 날이 가진 이중적인 의미

이탈리아의 ‘페스타 델라 도나’는 축하와 연대의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인 투쟁의 흔적이 깃들어 있습니다. 원래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 항의하며 벌인 대규모 시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시위는 세계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이어졌고, 이후 1910년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이 제2차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에서 이 날을 국제기념일로 제안하면서 확산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인 여성운동이 전개되면서 ‘여성의 날’이 국가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존재했고, 여성의 정치적 참여와 경제적 독립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페미니즘 운동과 여성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이 날을 단순한 축하가 아니라 ‘권리의 날’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여성의 날’은 점차 상업화되고 축제처럼 소비되는 경향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미모사꽃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는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할인 행사나 파티가 열리면서 일종의 ‘밸런타인데이’와 비슷한 분위기로 변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기념일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와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는 긍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여성단체와 사회운동가들은 이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행동하는 날’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3월 8일이면 여성의 권리 향상, 직장 내 성차별 반대, 가정폭력 근절 등을 주제로 한 캠페인, 퍼레이드, 시위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상의 고마움, 존중의 표현으로 다시 돌아오는 미모사꽃의 의미

미모사꽃은 이제 이탈리아에서 ‘여성을 위한 가장 친숙하고 따뜻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꽃은 단순한 선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여성들의 노동, 헌신, 감정노동 등에 대해 ‘오늘만큼은 당신을 생각하고, 존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건네는 수단이 된 것이죠.

많은 이탈리아 남성들은 이날 연인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당신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마음을 담아 미모사를 건넵니다. 물론 모든 남성이 이 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며, 상업적인 이벤트처럼 참여하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모사를 주고받는 행위 자체는 점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공감의 표현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한 최근 들어 이탈리아의 젊은 세대는 미모사꽃을 단순히 남성이 여성에게 주는 선물이 아닌, 여성 스스로를 위한 상징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친구나 동료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미모사를 선물하며 연대의 의미와 자존감을 다지는 방식으로 문화가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미모사’, ‘우리를 위한 미모사’라는 문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며, 여성의 날은 개인의 축하를 넘어 공동체적 가치의 실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부 여성단체는 미모사를 넘어서 새로운 상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환경적인 문제, 여성 이슈의 다변화, 세대 간 인식 차이 등을 고려할 때 미모사꽃이 가지는 상징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이 노란 꽃다발이 3월 8일의 감성을 대표하는 친숙한 상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적습니다.


이탈리아의 ‘페스타 델라 도나’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이 날은 과거의 투쟁을 기억하고, 현재의 여성들을 응원하며, 미래를 위한 변화를 다짐하는 하루입니다. 미모사꽃은 그러한 의미를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따뜻한 상징이며, 수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감정과 연대의 매개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단 한 송이의 꽃이 줄 수 있는 위로와 존중, 그리고 함께 나누는 마음의 힘을 다시금 떠올려볼 시간입니다. 올해 3월 8일, 우리도 ‘여성의 날’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며 미모사의 향기처럼 따뜻한 존중의 문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