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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속에 숨겨진 역사– 영국의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wkes Night)’

by 리베원 2025. 5. 23.

오늘은 화약 음모 사건을 기념하는 날인 불꽃 속에 숨겨진 역사 – 영국의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wkes Night)’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불꽃 속에 숨겨진 역사– 영국의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wkes Night)’
불꽃 속에 숨겨진 역사– 영국의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wkes Night)’

 

화약 음모 사건과 가이 포크스: 잊히지 않는 밤의 시작

 

11월 5일, 영국 전역에서 하늘을 수놓는 불꽃과 함께 타오르는 모닥불, 그리고 흔히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로 시작하는 노래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선 역사적 기억입니다. 이 날은 바로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wkes Night)’로, 1605년 벌어진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가이 포크스(Guy Fawkes)’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로마 가톨릭 신도였고, 당시 잉글랜드의 국왕 제임스 1세가 가톨릭에 대한 박해 정책을 강화하자 이에 반기를 든 급진파들과 함께 의회 폭파를 계획했습니다. 그들은 영국 상하 양원의회가 모두 모인 개회일에, 의사당 지하에 숨겨둔 화약 36통을 터뜨려 국왕과 귀족을 한꺼번에 제거하고, 가톨릭 왕정을 수립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음모는 11월 5일 새벽, 익명의 편지 제보로 인해 발각되었고, 현장에서 화약을 점화하려던 가이 포크스는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끔찍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으며, 그와 함께한 음모자들도 대부분 사망하거나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쿠데타 시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영국 정부는 매년 11월 5일을 ‘의회의 승리’와 국왕의 생존을 축하하는 날로 지정했습니다. 그 첫 해부터 런던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가이 포크스를 형상화한 인형을 불태우는 의식이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통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축제화되어 오늘날의 ‘가이 포크스 데이’로 정착한 것입니다.

 

 

불꽃놀이와 모닥불, 그리고 인형: 오늘날의 가이 포크스 나이트

현대 영국에서 가이 포크스 데이는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채, 가족 단위의 축제로 발전해왔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11월 초, 영국 전역의 공원과 마을에서는 커다란 모닥불과 불꽃놀이 행사가 열립니다. 특히 런던, 리즈, 요크, 브라이턴 같은 대도시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하나의 대형 축제를 만들어내지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가이(Guy)’라 불리는 인형을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불태우는 의식입니다. 아이들은 마네킹처럼 만든 인형을 끌고 다니며 “Penny for the Guy!”라고 외치며 동전을 받기도 하는데, 이 전통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화형 퍼포먼스는 여전히 주요 볼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인형이 가이 포크스를 풍자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유명 정치인이나 유명인을 형상화한 인형이 등장해 풍자와 유머의 기능도 하고 있습니다.

불꽃놀이는 가이 포크스 나이트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밤 7시를 전후로 하여 수많은 마을과 학교, 커뮤니티 센터에서 환상적인 불꽃놀이 쇼가 펼쳐지며, 일부 지역에서는 카니발 퍼레이드나 불꽃 쇼를 위한 사운드트랙까지 준비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이 축제는 ‘공공의 역사’가 가족 중심의 문화로 전환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한편, 전통적인 간식들도 축제의 재미를 더합니다. ‘파킨(Parkin)’이라는 진저 시럽 케이크나, 불 위에 구운 감자, 토피 애플(사과에 설탕코팅)을 먹으며 몸을 녹이고 축제를 즐기는 풍경은 매우 정겹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이 포크스 데이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주의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큰 불꽃과 폭죽 소리가 동물들에게는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조용한 불꽃놀이를 지향하거나, 실내 행사를 선호하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분열의 역사에서 연대의 문화로: 가이 포크스 데이의 오늘

 

가이 포크스 데이는 단순히 폭죽과 불놀이를 즐기는 날이 아닙니다. 그것은 잉글랜드 종교 분열의 역사, 정치적 불만, 시민 참여, 그리고 자유에 대한 기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날입니다. 17세기 당시 영국은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시대였고, 화약 음모 사건은 이러한 긴장감의 극단적인 표출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이 날은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을 축하하는 날이 아닙니다. 현대 영국 사회는 이 날을 과거의 폭력을 기억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즉, 정치적 반란의 날에서, 가족과 이웃이 함께 어울려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날로 의미가 진화한 것이지요.

또한 가이 포크스의 이름은 현대 문화에서 ‘저항의 아이콘’으로도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 등장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입니다. 이 가면은 현실에서도 여러 사회운동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쓰이게 되었고, ‘어나니머스(Anonymous)’와 같은 해커 집단의 상징으로도 자리잡았습니다.

이처럼 가이 포크스 데이는 과거의 실패한 폭동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 정치적 저항, 시민 참여라는 개념과 연결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제 이 날을 통해 역사 교육을 강화하고, 어린이들에게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며, ‘기억의 중요성’을 전하는 계기로 삼기도 합니다.

가이 포크스 데이의 이러한 진화는, 어떻게 한 국가의 어두운 기억이 수 세기를 지나 축제로, 그리고 공동체를 잇는 문화적 행사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단지 불꽃놀이가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며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는 날로 남은 것입니다.


영국의 11월 5일, 그저 화려한 불꽃만을 위한 날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와 정치, 종교와 문화가 교차하는 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공동체가 모닥불 앞에 모여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염원하는 순간입니다.

‘가이 포크스 데이’는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혹시 영국 여행 계획이 있다면, 11월 5일에 맞춰 방문해보세요. 단순한 불꽃놀이가 아닌, 영국인이 어떻게 과거를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지를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