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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축제,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by 리베원 2025. 5. 14.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 이렇게 화려할 수 있을까요? 매년 11월 1일과 2일, 멕시코에서는 거리 전체가 해골 장식과 마리골드 꽃으로 물들고, 음악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독특한 축제가 열립니다. 오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축제, 멕시코의 이름하여 ‘죽은 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에 대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축제,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축제,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이날은 단순히 고인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 사랑했던 이들과 다시 만나는 축제이자 파티입니다. 오늘은 멕시코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그 상징이 담긴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기억의 시작


죽은 자의 날은 11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진행됩니다. 1일은 ‘어린 영혼들(Angelitos)’을 위한 날, 2일은 성인 영혼들을 위한 날로 구분되어 각각의 고인을 기리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멕시코인들은 가족들과 함께 고인의 무덤을 찾아가 청소하고 꽃을 장식하며, ‘오프렌다(Ofrenda)’라는 제단을 가정 안에 꾸밉니다. 제단에는 고인의 사진,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과 음료, 향초, 마리골드 꽃(Cempasúchil)이 빠지지 않습니다.

특히 마리골드는 영혼이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오렌지빛 꽃잎이 뿌려진 길을 따라 고인들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전통 신앙이죠. 오프렌다에는 물과 소금도 놓이는데, 물은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소금은 정화와 보호의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멕시코인들은 이 날을 통해 고인들과 다시 연결되고, 그들의 존재를 기억이라는 형태로 되살립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사랑과 추억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삶의 일부라는 인식이 그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웃고 있는 해골, 그 안에 담긴 철학


죽은 자의 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웃고 있는 해골, 이른바 칼라베라(Calavera)입니다. 일반적으로 해골은 공포, 슬픔, 비극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날만큼은 다릅니다. 해골이 밝고 화려하게 꾸며지고, 아이들은 설탕해골(Sugar Skull)을 선물 받으며, 거리에는 해골 분장을 한 사람들이 줄지어 춤을 춥니다.

이러한 해골은 단지 장식이 아닙니다. 멕시코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상징하는 문화적 표현입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결국 누구나 가야 할 길이기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며, 그 너머에 있는 추억과 사랑을 중심에 둡니다.

해골의 미소는 곧 죽음을 농담처럼 웃어넘길 수 있는 지혜를 말합니다. 삶과 죽음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으며,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얼마나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지를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죠.

이러한 철학은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Coco)>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영화 속에서도 죽은 자들은 잊히지 않으면 이승에 머물 수 있고, 기억되는 한 존재는 소멸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나오죠. 이는 Día de los Muertos의 핵심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음식과 축제, 죽음을 기념하는 또 다른 방식

 

죽은 자의 날은 종교적·정신적 의미 외에도 일상과 연결된 축제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설날처럼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거리에 나가 퍼레이드를 즐기며,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합니다.

이때 빠질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판 데 무에르토(Pan de Muerto)’, 즉 ‘죽은 자의 빵’입니다. 설탕을 뿌리고 뼈 모양 장식이 얹혀진 둥근 빵으로, 고인과 나눠 먹는다는 의미로 가족끼리 함께 먹습니다. 그 외에도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들이 함께 차려지며, 이 음식들은 제단에 올려졌다가 다시 가족들이 나눠 먹습니다. 이는 고인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상징적 행위이기도 하죠.

도시에서는 화려한 퍼레이드도 진행됩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수천 명이 해골 분장을 하고 행진하며, 전통 음악과 춤, 다양한 문화 행사가 이어집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 해골 가면을 쓴 어린이들,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차량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모습은 죽은 자의 날이 단순한 의례를 넘어선 문화의 축제임을 보여줍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단지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죽은 이를 그리워하고, 다시는 볼 수 없음을 애도하는 대신, 다시 만났다고 믿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방식은 분명 슬픔을 이겨내는 아름다운 방법입니다.

 

‘죽은 자의 날’은 단순한 전통 축제를 넘어서,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멀리하고 두려워하며, 애도의 형식으로만 다루려 합니다. 그러나 멕시코인들은 그 반대입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포용하고, 죽은 이를 기억하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죽은 자의 날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그들을 진정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당신이 기억하는 그 사람도, 오늘 잠시 당신 곁을 찾아왔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