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인구 구성의 특수성으로 인해 하나의 명절이 두 번의 의미를 갖는 특별한 나라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한국과 달리 설을 두 번 기념하는 ‘말레이시아의 춘절(CNY)’ 문화– 다민족 국가에서 구정이 가지는 복합적 의미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설날이 음력 1월 1일, 즉 구정만을 지칭하는 반면, 말레이시아에서는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가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구정은 단순한 민족 명절이 아닌 국가적 축제로 승화된 날입니다.
이 나라의 춘절, 즉 Chinese New Year(CNY)는 중화계 국민들에게 있어 가장 성대한 전통 명절이자, 다른 민족 구성원들에게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회 전체의 축제’입니다.
‘춘절’은 누구의 명절인가? – 말레이시아 중화계의 역사와 전통
말레이시아의 전체 인구 중 약 23%가 중국계(중화계)입니다. 이들은 15세기부터 무역과 이민을 통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영국 식민지 시절 대규모로 이주해 말레이시아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중화계는 주로 광둥, 복건, 하카 등의 중국 남부 출신들이며, 각자의 방언과 전통을 지키면서도 음력 설날인 춘절(CNY)을 가장 중요한 명절로 여겨왔습니다.
중화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춘절을 맞아 대청소(春运), 문에 복(福)자 거꾸로 붙이기, 연등 장식, 만찬, 그리고 홍바오(ang pao, 붉은 봉투) 나누기 등의 전통을 지킵니다. 이 기간에는 친척 방문(拜年)과 함께 다과와 설 음식, 특히 ‘위생 로(Yee Sang)’라는 생선회 샐러드 요리를 함께 던져 올리며 복을 기원하는 독특한 문화도 발달해 있습니다. 위생로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만 즐기는 춘절 음식으로, 단체의 단합과 번영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춘절은 중화계 커뮤니티 내에서 조상의 전통을 되새기고,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시기입니다. 현대화된 도시 속에서도 이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말레이시아의 정치·사회적 틀 속에서 중화계 정체성의 핵심을 상징합니다.
공휴일이자 ‘국민적 명절’로서의 CNY – 타 민족과 함께 만드는 축제의 풍경
말레이시아에서는 춘절이 공식 공휴일(이틀)로 지정되어 있고, 많은 기업은 그 이상으로 휴무를 권장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중화계만의 명절이 아닌,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축제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말레이시아가 헌법에 의해 ‘다민족 사회’를 지향하며, 서로의 문화와 종교, 전통을 존중하고 함께 기념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기인합니다.
예를 들어 말레이계 무슬림들은 설 연휴 기간에 중화계 이웃이나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음식을 나누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 문화에 참여합니다. 이 전통은 말레이시아 고유의 문화로, 서로 다른 민족이 명절마다 문을 열고 음식을 나누며 우정을 다지는 행사입니다.
‘오픈 하우스’는 이슬람의 하리라야, 힌두교의 디왈리, 그리고 춘절에도 모두 열리며, 국무총리 관저에서도 대형 오픈 하우스가 개최되어 모든 민족이 참여하는 상징적인 행사가 됩니다.
또한 정부는 매년 대형 춘절 축제를 주최하고, 다양한 민족이 함께 퍼레이드, 전통 무용, 사자춤 공연을 즐깁니다. 텔레비전에서도 중국어, 말레이어, 영어로 된 설날 프로그램이 방송되어, 언어와 문화를 넘나드는 통합적 경험이 일상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말레이시아의 춘절은 단일 민족 명절을 넘어, 국가적 화합의 장이자 문화 교류의 기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명절을 통해 엿보는 말레이시아 다문화 사회의 힘
말레이시아의 춘절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명절 이상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며, 서로를 축하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한국에서는 ‘설날’이 음력 1월 1일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말레이시아에서는 중화계 설과 이슬람력의 하리라야(이드), 힌두교의 디왈리 등 다수의 민족별 명절이 모두 국가적인 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문화적 존중과 공동체 정신을 제도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상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춘절을 맞아 중화계 커뮤니티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기도 합니다. 고아원 방문, 자선 공연, 환경 정화 활동 등을 통해 ‘복을 나누는 명절’로서의 가치를 실현합니다. 이러한 실천은 말레이계와 인도계 시민들까지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만들어, 명절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기회가 됩니다.
오늘날 말레이시아의 젊은 세대들은 다문화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서, 여러 명절과 전통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단순한 ‘다민족 국가’를 넘어 다문화 공존을 실현하는 모델 국가로 기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음력 설날을 단일 민족의 전통으로 기억하고 기념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춘절이 단지 ‘중화계만의 명절’이 아닌, 국가가 함께 축하하고 경험하는 공공의 문화 행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을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함께하는 다문화 사회의 저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말레이시아의 춘절은 우리에게도 깊은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다가오는 설 명절, 우리의 문화만이 아니라 이웃 나라들의 전통과 방식도 함께 배우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공존’을 실현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